2025년 6월 21일 · 버킷리스트

When you wish upon a star

빛나는 모니터 화면 대신 빛나는 별

When you wish upon a star

햇빛

호주에 와서 가장 먼저 다르다고 느낀 점은 바로 햇빛이다. 햇빛이 정말 “광선”처럼 내리쬔다. 직선으로 뻗는 빛이 닿는 표면은 스스로 빛을 내는 듯하고, 그 경계 밖은 빛이 닿지 않는 것처럼 어둡다. 호주가 자외선으로 인해 피부암 발병률이 세계 1위라던데.

외지에서 별을 보겠다는 하나의 의지를 가지고 기차와 배로 3시간 정도 도시에서 떨어져 있는 곳에 왔는데, 전날 비가 와서 그런지 하늘에 구름 한 점 없었다. 운이 좋다.



빛나는 모니터 화면 대신 빛나는 별

야간시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빨간색 조명등을 켰어도, 코앞에 있는 사람 얼굴조차 전혀 안 보였다. 검은색 실루엣들과 짧은 자기소개를 나누고(디지털 디톡스를 하고 싶어서, 빛나는 모니터 화면 대신 빛나는 별을 보러 왔다고 나를 소개했다.), 주변 벤치에 누워 별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천문학자가 주최한 모임이었는데, 그는 수시로 레이저포인터로 하늘을 가리키며 저건 별똥별이 아니라 일론 머스크의 스타링크라며 사람들의 질문에 답해주느라 바빴다. 디자인 전공을 살려서 별 사진을 찍는 방법을 미리 공부해왔던 나는 곳곳에서 이상한 포즈를 해가며 열심히 사진을 찍었고, 사람들이 내가 찍은 사진에 관심을 보였다. 모임이 끝마칠 때가 되니 다들 나에게 에어드랍으로 보내달라, 이메일로 보내달라 요청했다.



회색이 된 하늘색

학교

난 어릴 적 장래희망이 천문학자였다. 밤에 학교 운동장에 나와서 하늘을 올려다보면 매일매일 별자리를 볼 수 있을 정도로 별은 나의 일상과 가까웠다. 당시엔 인터넷을 사용하기도 어려워서, 도서관에서 책을 보고 모양과 위치를 외워서 별자리를 찾으려 애썼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도시화로 인해 밝은 별빛만 보이기에 별자리를 찾기가 쉬워졌다고 느낀다. 하지만 나의 어릴적 밤하늘은 모래사장과도 같아서 빛나는 알갱이가 가득 흩뿌려져있었고, 기술도 지식도 없는 초등학생이 별자리를 찾기란 보통 일이 아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도시로 이사를 갔다. 하늘은 파란색에서 회색이 됐고, 하늘을 가리던 것은 나무가 아니라 콘크리트 빌딩이 되었다. 하늘을 올려다보는 빈도가 줄었고, 별에게 소원을 비는 일도 점차 줄었다.



Makes no difference who you are

학교

한 줄기 레이저와 같이 선명한 빛이 하늘에 실선을 그엇다가 찰나에 사라졌다. 별똥별이었다. 두 눈으로 직접 본 것은 난생 처음이다. 너무나 순식간에 지나가버려 인지하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별똥별에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것이 떠올라, 머릿속으로 열심히 어떤 소원을 빌까 고민했다.


When you wish upon a star
Makes no difference who you are
Anything your heart desires will come to you
If your heart is in your dream
No request is too extreme
When you wish upon a star as dreamers do


‘별에 소원을 빌’ 기회는 모두에게 평등하게 열려 있으며, 간절히 원한다면 이루어질 것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렇지만 현실에서 사람들은, 별에 소원을 빌면 마치 철없는 어린아이나 미신을 믿는 사람의 몽상처럼 치부하거나 비웃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소원은 말하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말이 생겨난 것일 테다. 소원을 알리게 되면 타인의 시선이나 반응에 의해 내 마음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에서도, 아니꼬운 주변의 시선에도, 결국엔 간절한 염원을 마음에 품고 있는 것이 소원을 이루어지게 하는 가장 강력한 힘이 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래서 위 노래가사가 “소원을 비는 행위는 온당하며, 꿈을 간직하는 마음은 너를 초라하게 만들지 않는다.”는 의미로 나에게 다가오기도 한다.



No request is too extreme


The most important part about being real, isn’t what you’re made of, it’s about what’s in your heart.
진실한 존재가 된다는 것은, 무엇으로 이루어졌느냐가 아니라 무엇이 마음에 담겨 있는가에 달려 있다.


제페토가 목각인형을 깎으며 진정으로 바랐던 것은 단순히 “인형이 생명을 얻어 인간이 되는 기적”이 아니었다. 피노키오가 소나무로 만들어진 인형이라는 사실이 그에게는 본질적으로 중요하지 않았다. 피노키오가 움직이고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제페토가 망설임 없이 기쁨과 수용의 자세로 피노키오를 아들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별에게 빈 소원이 ‘사랑하고 사랑받을 기회’였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나는 항상 제페토와 같은 소원을 별에게 매번 빌어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다른 소원을 빌었다.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소매로 눈물을 계속 훔쳤는데, 손에 들고 있던 커피를 옷에 모두 쏟았다는 것을 내릴 때가 되어서야 알게 됐다.